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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삶

청약 당첨, 청약통장 해지, 집의 의미

by 칠치리 2016. 7. 5.

# 청약 당첨과 미래의 집

 

7-8년간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했던 청약통장이 드디어 제 때 쓰이게 됐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일까. 지난해에는 청약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하며 시험삼아 두세번 넣어봤고 본격적으로 신청한 건 올해 DMC 아이파크였는데, 기대와 달리 떨어졌다(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 듯?). 사실 특별공급이 아닌 일반공급으로 넣어서 청약에 당첨되기란 쉽지 않다. 내 나이에 가점이 많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부양가족가 많을수록, 무주택기간(만 30세부터)과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길수록 가점 상승).

 

이번 파크자이에 경쟁률이 그나마 덜하다는 84로 넣었더니 운이 좋았다. 청약 담청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걸 확인 하는 순간, 그 감정은 형언할 수가 없다. 나중에 모델하우스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난 가점이 아닌 추점으로 된 거 였다(가점으로 40% 뽑고, 나머지 60%는 추점으로). 그래 내가 가점으로 될 수가 없지. 당첨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 알고나서 기쁨이 더 배가 됐다.

 

당첨된 곳은 낯설지 않은 지역이고 내가 원했던 주변 환경 그리고 여친의 회사와 내 회사와도 그리 멀지 않은 적절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미 지하철역이 있지만 향후 서부선이 생긴다는 호재와 주변 재개발이 꾸준이 진행되고 있어 아파트 대단지가 형성된다는 더블호재가 있는 곳이다.

 

청약 당첨 이후 내집이 생겼다는 기쁨과 급작스럽게 다가온 이 어떨떨한 상황이 뒤섞이며 평온한 마음 상태가 지속됐으나, 계약을 하는 순간 내 삶에 크나큰 변화가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두려움이 아닌 설레임, 어른이 되는 걸까, 지금까지와 다른 삶, 남들도 다 거쳤을 과정이겠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차근차근 준비해온 뿌듯한 결과물?, 결혼이라는 새출발의 좋은 신호일 거야 등의 여러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하나로 명확히 표현할 만한 적절한 감정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좋은 쪽인 것만은 확실했다.

 

 

 

 

7월 4일 점심시간에 짬 내서 모델하우스로 갔다. 세번째 방문이다. 세번을 봐서 그런지 주변 풍경이 눈에 익숙하게 다가왔다. 이미 정을 줘버린 건 아닐까. 한참을 대기하다 내 차례가 왔고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며 계약을 진행했다. 아파트 계약과 함께 이것 저것 유상옵션도 선택했다. 물론 여친과 다 협의한 것들이다. 확장부터 중문 설치, 냉장고 붙박이, 바닦 소재 등 고민과 선택이 끝도 없더라. 비슷한 취향,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서로를 배려해주는 성격 탓에 우린 무난히 잘 해결했다.

 

계약 관련 서류가 꽤 많다. 기존에는 원룸 정도만 계약서를 봐왔터라 살짝 긴장됐다. 계약을 다 마치고 나서 일단 중요한 부분만 사진을 찍어 여친에게 보내주고 나중에 전체 서류를 보여주기로 했다. 1차 계약금, 확장비와 중문 계약금 이체 내역도 문자로 보내줬다. 니집 내집도 아닌 우리의 집이기 때문이다.

 

이번 뿐만 아니라 결혼과 관련된 일련의 모든 과정에서 "니돈이 내돈이고 내돈이 니돈이다" 라고 얘기해왔다. 하지만 아직은 결혼 전이니 무엇보다 돈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증명을 해보이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확신과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라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요구하지 않아서 알아서 척척 보내주는 것 또한 잘 맞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돈 때문에 싸우는 것, 그것만큼 바보같은 경우가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그게 인생사, 일상다반사, 타툼과 오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니 결코 쉽게 볼 일은 아니다.

 

당장 살 집은 아니지만 미래의 집을 구했다는 생각에 마음의 짐을 반 정도 덜어낸 것 같다.

 

 

 

# 청약통장 해지 그리고 재가입

 

7월 4일 아파트 계약과 동시에 회사로 돌아와서 기존에 갖고 있던 청약통장을 해지하려고 인터넷뱅킹에 접속했다. 사실 청약 당첨 확인과  동시에 해지할 수도 있었으나, 혹시나 청약 신청 시에 가점 산정이 잘 못 돼 불인정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미뤘던 것이다. 불인정 되면 청약 통장을 못 쓰게 되니, 살릴 수 있는 소명의 기회는 가져보자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명확해지는 건 '사람일은 모른다'라는 가정이다. 그것 때문에 결정장애자가 되기도 하지만 덕을 본 경우도 더러 있다. 지난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

 

계약을 마쳤으니 마음 놓고 해지를 하려 했으나 인터넷뱅킹 해지 과정에서 소득공제 관련 경고창이 뜨길래 머리가 아파왔다(무슨 내용인지 모르겠...). 일단 미루고 다음날 영업지점을 찾았다. 일사천리로 해지 절차를 거치고 이자를 보니 우와-. 뭐지 이 횡재한 기분은(이자세, 지방소득세는 화가 난다!). 요즘 은행 금리에서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자였다. 주택청약이 이율도 괜찮고 장기간에 걸쳐 유지해온 이유가 클 것이다.

 

 

 

 

그리고 해지와 동시에 새로운 주택청약종합통장에 재가입했다.

 

역시나 사람 일은 모른다는 가정이 또 적용되는 순간이다. 일단 저축의 개념으로 월 인정금액 10만원보다 적은 5만원으로 월 납입을 신청했다.

 

 

 

# 집의 의미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 구나. 감개무량하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남모를 수많은 생각과 고민, 선택이 있었다. 특히 청약을 넣기 전과 계약을 하기 전 갈등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인생 뭐 별 거 있나. 한 번 뿐인 인생 좋은 집에서 시작하고 그만큼 또 열심히 모아 내 자산으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주변에 호재로 인해 집값이 오른다면야 금상첨화이지만, 그저 내 집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정과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또 하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겨난 내 가치관이 있다면, 집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을 위해, 집 평수를 위해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와 같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면서 더욱 더 윤택한 삶을 꾸릴 수 있길 바란다.

 

물론 그만큼 또 다른 내공을 다지고 길러야 한다. 뭐든 만만한 게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 정답이 아닐지언정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야지.

 

새롭게 가입한 청약통장을 보니, 문득 내 20대가 생각난다.

 

첫 월급을 받자마자 만들었던 청약통장. 청약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만들었던 그 순수함이 안스럽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있기에 오늘이 존재하고, 오늘이 있기에 그 순간이 빛을 본다.

 

 

지금부터 20년 뒤 당신은 잘 못 해서 후회하는 일보다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던져 버려라.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 멀리 항해하라.
무역풍을 타고 나아가라. 탐험하라. 꿈꿔라.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